
성과의 시대에 존재로 쉰다는 것 – 리슬링과 에리히 프롬
퇴근하고 집에 돌아왔다. 가방을 내려놓고, 신발을 벗고, 불을 켰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몸은 집에 도착했는데 마음은 아직 회사에 남아 있는 것만 같다. 미처 끝내지 못한 기획서, 답하지 못한 메신저 알림, 내일 아침 회의 준비. 머릿속에서는 여전히 할 일 목록이 돌아간다. 냉장고를 열어 리슬링 한 병을 꺼냈다. 차갑게 칠링된 와인병 표면에 물방울이 맺혀 있다. 유리잔에 따르니 연한 황금빛 와인이 조명을 받아 반짝인다. 가만히 잔을 들고 향을 맡았다. 시트러스와 청사과, 그리고 희미한 꽃 향. 맑고 투명한 이 한 잔 앞에서, 나는 잠시 멈춰 선다.
쉬고 있는데도 쉬는 것 같지 않은 저녁. 이런 밤이면 문득 생각한다. 나는 지금, 성과와 역할이 아니라 '존재하는 나'로 쉬고 있을까?
리슬링은 화려하지 않다. 레드 와인처럼 묵직하게 몸을 감싸지도 않고, 샴페인처럼 축제 같은 기분을 주지도 않는다. 그저 상큼한 산도와 투명한 향으로, 조용히 옆에 앉아 있어 준다. 무겁지 않게 나를 풀어주는 한 잔. 한 모금 마시니 입안에 차가운 감촉이 퍼진다. 레몬 껍질 같은 상큼함, 청사과를 베어 물었을 때의 아삭한 느낌. 리슬링은 단순히 가볍기만 한 와인이 아니다. 그 속에는 맑은 긴장이 있다. 내 안의 뭉친 감정을 조금씩, 천천히 풀어주는 투명한 숨 같은 존재. 화려하게 말을 걸어오는 대신, 가만히 있어 주는 것만으로 위로가 되는 와인이다. 이 와인을 마시는 동안만큼은, 무언가를 증명해야 한다는 압박감을 잠시 내려놓아도 괜찮다는 생각이 든다.
철학자 에리히 프롬은 우리에게 이런 질문을 던진다. "당신은 지금, 소유의 방식으로 살고 있는가, 존재의 방식으로 살고 있는가?" 소유의 방식이란, 내가 무엇을 가지고 있는지, 무엇을 성취했는지로 나를 평가하는 삶이다. 직함, 연봉, 스펙, 팔로워 수, 완료한 프로젝트 개수. 우리는 무의식중에 이런 것들로 자신을 설명한다. "나는 이런 회사에 다녀요", "요즘 이런 일을 해요", "이번 달에 이걸 끝냈어요." 그런데 문득, 이런 질문이 찾아온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가만히 있는 나를 견딜 수 있는가? 성과를 내지 않고, 누군가에게 칭찬받지 않고, 아무 역할도 하지 않는 순간에도 나는 여전히 괜찮은 사람일까? 프롬이 말한 '존재의 방식'은, 바로 이 질문에서 시작한다. 지금 이 순간 느끼는 감각, 생각, 대화 자체에 머무를 줄 아는 것. 무언가를 소유하거나 증명하지 않아도, 그저 여기 존재하는 것만으로 충분하다고 믿을 줄 아는 태도. 그것이 진짜 쉼의 시작이다.
리슬링 한 잔을 마시는 이 시간, 나는 아무것도 생산하지 않는다. 이 와인을 마신다고 해서 업무 능력이 향상되지도 않고, 자기계발이 되지도 않는다. 그저 차가운 와인이 목을 타고 내려가고, 은은한 향이 코끝에 머물렀다가 사라질 뿐이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이 시간이 가장 나다운 것 같다. 할 일 목록에서 잠시 눈을 떼고, 누군가에게 잘 보이기 위한 '열심히 사는 사람' 역할을 내려놓고, 그냥 '존재하는 나'를 허락하는 순간. 냉장고에서 꺼낸 리슬링의 차가움이, 뜨겁게 달아올랐던 마음을 식혀 준다. 소유의 모드에서는 쉬는 시간조차 생산성의 도구가 된다. "휴식을 취해야 내일 더 잘할 수 있어", "리프레시해야 효율이 올라가지." 그렇게 쉼마저 성과를 위한 투자가 되어버린다. 하지만 존재의 모드에서는, 이 한 잔의 와인이 어떤 목적도 없다. 그저 지금 이 순간, 나는 여기 있고, 이 와인도 여기 있다. 그걸로 충분하다.
혹시 당신도 쉬는 시간에 죄책감을 느끼는 사람인가요? 쉴 때조차 유튜브로 자기계발 강의를 틀어놓고, 뭔가 '건설적인' 일을 해야 할 것 같은 압박을 느끼는 사람인가요? 그렇다면 오늘만큼은 이 말을 믿어도 괜찮습니다. 오늘 하루 아무것도 생산하지 않아도, 누군가에게 자랑할 만한 성과를 내지 않아도, 그저 조용히 리슬링 한 잔을 마시며 자기 호흡에 귀 기울이는 것만으로도 당신은 충분히 쉰 것입니다. 그것이 존재의 방식으로 쉬는 것이니까요. 좋은 쉼은 새로운 에너지를 끌어오기 위한 투자 수단이 아닙니다. 그 자체로 이미 충분한 삶의 한 장면입니다. 당신이 지금 이렇게 잔을 들고 있는 이 순간도, 살아있는 하루의 일부입니다. 무언가를 더 가지지 못했다고, 더 이루지 못했다고 자책할 필요가 없습니다. 지금 이렇게 존재하고 있는 것만으로, 이미 당신은 괜찮은 사람입니다.
잔에 남은 마지막 한 모금을 마셨다. 창밖에는 도시의 불빛이 조용히 깜박이고, 집 안의 작은 조명만이 은은하게 공간을 비춘다. 스마트폰 화면도 이제 조용해졌다. 알림도, 메시지도, 할 일 목록도 잠시 멈춰 있다. 오늘은 더 가지지 못한 것 대신, 지금 이렇게 존재하고 있는 나를 잠시 바라보고 지나간 밤이었다. 극적인 변화도, 큰 깨달음도 없었지만, 이 정도면 오늘도 괜찮았다. 리슬링 한 잔이 비워지고, 나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인다. 그래, 이 정도면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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